[인터뷰] 이동화 신부 "공정한 임금으로 노동과 인간 존엄 지킬 수 있어야"

[인터뷰] 이동화 신부 "공정한 임금으로 노동과 인간 존엄 지킬 수 있어야"

Home > NEWS > 가톨릭
입력 : 2020-10-16 18:20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이동화 신부/ 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겸 신학원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노동의 가치, 돈 주고 사는 상품과 같은 가치로 몰락

노동을 수행하는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보호받아야

노동은 하느님 창조와 그리스도의 구원에 협력하는 인간의 활동

자본, 기술은 인간 노동과 생산의 결과물일 뿐

활동 자체로 우위에 있는 노동, 재화의 보편 목적으로 이어져

공정한 임금은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데 부족함 없어야

기본소득이나 사회보장 같은 임금 보전 조치 필요해


[인터뷰 전문]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창세기 2장 15절의 말씀인데요. 세상 창조 때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노동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지나면서 그 개념과 의미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관련해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사목소위원회가 최근 새로운 시대의 노동에 대한 교회의 이해를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했는데요.

토론회 주제를 맡은 이동화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겸 신학원장 신부 연결해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이동화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이동화 신부입니다.


▷토론회에서 사회교리적 측면에서 노동에 관해 말씀을 하셨던데 먼저 가톨릭교회가 말하고 있는 노동의 의미부터 짚어주시겠습니까?

▶우리가 노동을 바라볼 때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은 주로 경제적 관점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동을 구체적인 사람의 일이라고 보기보다는 아주 추상적이고 그런 의미에서 또 추상화된 상품으로 바라본다는 것이죠. 그래서 노동의 가치라는 것이 인간적인 가치인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의 가치 그리고 어떤 것을 생산하느냐의 가치. 더 정확하게는 돈 주고 사는 상품과 같은 그런 가치로 몰락하게 돼 버렸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이런 관점들에 동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노동을 바라볼 때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하게 인간학적인 관점에서 노동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볼 때 노동은 인간의 의식적인 활동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보면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그 존재도 존엄하고 당연히 인간의 활동 역시 존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의 존엄은 노동의 형태나 종류에 따라서 달리 평가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에 노동의 종류나 형태의 관계없이 모든 노동이 존엄하다는 것이죠. 가톨릭교회가 바라보는 노동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고 그래서 어떤 노동이든 그 종류와 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은 존엄하고 보호받아야 하고 그 노동을 수행하는 인간은 존엄하고 보호받아야 된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고 그것이 이제 개괄적인 의미에서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돈 주고 사는 상품의 가치로 지금은 전락돼 버린 노동의 잘못된 의미부터 바로잡아야 된다는 말씀이신데요.

▶하나만 더 나아가서 말씀을 드리면 노동은 그런 인간학적인 측면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신학적이고 영성적인 측면도 동시에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셨는데 그 노동이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의 과정 안에서 최종적인 창조와 구원에 협력하는 하느님 창조와 그리스도의 구원에 협력하는 인간의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노동과 관련한 교회의 가르침을 2단계로 나눠서 설명을 하셨던데요. 이거 어떻게 나눌 수 있는 겁니까?

▶교회가 노동에 대해서 여러 가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굉장히 구체적으로 노동에 대해서 입장을 표명한 것은 1891년에 레오 13세 교황의 `새로운 사태`라고 하는 회칙을 통해서였습니다. 지금까지 120년 가까이 시간 중에 레오 13세의 ‘새로운 사태’에서부터 20, 30년간의 시간 중에 크게 나누면 레오 13세의 ‘새로운 사태’에서부터 비오 11세 교황의 ‘사십주년’ 1931년 그것을 지나서 사목헌장까지가 첫 번째 단계이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또 특별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회칙까지 그것을 2단계로 나누어보았습니다.

나눈 근거들은 첫 번째 단계에서는 레오 13세에서부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의 단계에서는 교회가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노동 그 자체보다는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권리들을 집중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들이 보호받아야 하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있다. 특별히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 그다음 정당한 임금을 받아야 할 권리 이런 문제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1단계에서는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에서 부터 출발해서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노동하는 인간의 회칙을 보게 되면 물론 노동자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또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들은 변함이 없습니다만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은 노동의 본질이 무엇이냐.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요. 그러한 의미에서 사목헌장에서부터 노동하는 인간에까지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까지는 주로 인간학적 관점 조금 더 특정하게 되면 인격주의적 관점에서 노동을 바라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크게 두 개의 단계로 나누어서 우리가 볼 수 있겠다고 제가 지난 토론회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노동과 관련한 그런 두 단계의 사회적 가르침을 통해서 `노동 우위성` 개념을 드러냈다는 말씀도 하셨던데, 그러면 `노동 우위성`이라고 하는 이 개념은 어떤 겁니까?

▶우리가 일반적인 경제학개론 이런 교과서 경제학에서 보면 생산요소라는 것을 보통 세 가지 정도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본, 토지, 노동 이렇게 생산요소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제2자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은 이러한 경제적인 요소들 가운데 노동이 우위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자본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한 형태의 재산 형태를 자본이라고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사실 인간 노동의 결과물들이죠. 인간 노동의 결과들이 역사 안에서 축적된 것을 특별한 형식으로 그것을 우리는 자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경제적인 요소의 하나인 토지 같은 경우에는 인간이 생산해 낸 것이 아니죠.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죠. 그렇다면 노동은 인간의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고 자본은 인간의 노동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고 토지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 창조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 생산요소들을 볼 때 노동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이고요. 나머지는 도구적인 것이고 인간 노동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하는 인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서도 다른 어떤 것들보다 예를 들면 사유재산 그리고 사유재산의 특별한 역사적 형태로서의 자본 이런 것들에 비해서 인간의 노동이 우위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관련해서 `노동이 인간을 위한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런 말씀도 하셨던데 그런데 당연한 이 말이 실제 노동현장에서는 마치 인간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종종 비춰지기도 합니다. 이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결국은 관점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 관점이 출발점인데 그 출발점부터가 잘못돼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여태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노동을 경제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우리나라의 정책이나 모든 것이 경제적 효과 이런 쪽으로 집중되지 않습니까?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고 그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겠으나 조금 더 근원적으로는 조금 노동을 인간의 활동이라는 인간학적인 관점들을 회복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할 때 노동이 정말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인간의 인격을 형성시키도록 도와주는 그런 긍정적인 측면들을 볼 수 있어야지 이걸 상품으로만 해서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벌겠다라고만 접근을 하게 되면 우리 사회가 잘못되고 있는 모습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4차 산업혁명 또 코로나19의 팬데믹 변화 속에서 노동 기회를 박탈당하는 어쩌면 인간 소외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들 나오는데 요.노동이라고 하는 이 틀 안에서 어떻게 좀 해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까?

▶노동을 인간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노동의 형태나 종류에 의해서 노동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수행하는 인간 때문에 노동이 존엄하게 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죠. 그래서 모든 노동을 우리가 존엄하게 생각하고 그 모든 노동을 행하는 이들에게 공정한 임금이 주어져야 하고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전 사회가 우리 모든 사회가 도와줄 때 올바르게 노동에 근거해 있는 사회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대가로 얻어지는 임금이 솔직히 다다익선 아니냐 싶기도 한데 공정한 임금에 대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 따로 있다면서요. 어떤 내용입니까?

▶노동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임금이죠. 가톨릭교회도 그런 의미에서 임금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고 있고요. 특별히 공정한 임금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이야기 전에 일반적인 이야기들을 하게 되면 우리는 임금을 생각할 때 우리가 노동을 생각할 때 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관점에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임금이 결정되는 것도 시장 안에서 결정되는 것이죠. 노동 시장 안에서 임금이 결정이 됩니다. 이를 우리는 시장 임금이라고 하는데요. 교회는 이러한 시장임금이 공정한 임금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는 그 가르침의 시작에서 부터 레오13세의 ‘새로운 사태’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 공정한 임금이라는 것은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데 충분한 정도의 임금, 이렇게 공정한 임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가능하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죠. 개별 기업에서 한 노동자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를 양육하는데 충분한 임금, 이걸 한 개별 기업에서 가능할 수 있느냐. 그렇게 공정한 임금을 주는 것이. 그런 질문들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사회교리는 그 공정한 임금이 될 수 있도록 개별 기업이 보호해 주지 못한다면 그걸 보전해 주지 못한다면 사회 전체가 다른 사회적 조치들을 통해서 책임져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회적 조치라고 그러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제공하는 기본임금, 기본소득 이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까?

▶사회보장도 있고요. 예를 들면 국가가 만일에 의료보건이나 교육에 관해서 국가가 책임져 준다면 사실상 현금으로 임금을 주는 효과를 주게 되는 것이죠. 그러한 사회적 제도를 통해서 임금을 전 사회가 국가가 보전해 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들어야겠네요.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겸 신학원장이신 이동화 신부님의 말씀 들었습니다. 신부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cpbc 윤재선 기자(leoyun@cpbc.co.kr) | 입력 : 2020-10-16 18:20

■ 인터뷰 및 기사를 인용보도할 때는 출처 'cpbc 가톨릭평화방송'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가톨릭평화방송 · 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