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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교회 신자들, 겉으로 표나지 않게 세례명 바꿔 불렀다

초기 교회 신자들, 겉으로 표나지 않게 세례명 바꿔 불렀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7. 세례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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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8 발행 [1609호]
▲ 초기 교회 신자들은 원래 여러 글자로 된 세례명을 두 글자나 세 글자로 축약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사진은 「사학징의」-정법죄인질에 보이는 보이는 세례명(왼쪽)과 「사학징의」-조혜의의 공초 기록 중 세례명 부분(오른쪽).



「사학징의」 속 정체 모를 세례명들

초기 교회 신자들은 세례명을 어떻게 정했을까? 그들은 성인 성녀의 이름과 행적을 어떤 경로로, 어느 범위까지 알 수 있었나? 세례명은 왜 이렇듯 쉬 알기 어렵게 다양한 형태로 표기되었을까? 이런 궁금증에 대해 두 번에 걸쳐 살펴보겠다.

유관검은 「사학징의」에 수록된 공초에서 세례명이 “서양의 도가 높은 사람의 이름을 본떠 짓는 것”이라고 했고, 정복혜(鄭福惠)도 공초에서 “사호를 부르는 것은 죽은 뒤에 좋다고 해서” 짓는 것이라고 한 대답을 보면, 서양에서 신앙으로 모범을 보인 성인 성녀의 이름을 따서 이들의 신앙을 자신의 표양으로 삼는 한편, 수호 성인으로 여겨, 살았을 때와 죽은 뒤까지 자신을 지켜주는 후광 같은 존재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사학징의」와 「추안급국안」의 죄인 심문 과정에 여러 사람의 세례명이 나온다. 백다록(白多祿: 최필제 베드로), 보록(保祿: 이국승 바오로), 다묵(多: 최필공 토마스), 갈륭파(葛隆巴: 강완숙 골룸바)처럼 비교적 익숙하고 널리 알려진 이름도 있지만, 다목이(多木伊: 주문모), 투다(投多: 여종 구월), 이사발(二四發: 성조이), 이사우(以柶于: 충주 이생원), 이로수(二老: 강완숙 시모), 다슬아(多瑟阿: 김순이), ᄲᅡ을이(조혜의), 윤아(閏阿: 김염이), 갈오사(乫於沙: 유덕이), 오소랄(吳蘇辣: 김녀), 발라소(發羅所: 김이우), 마달(馬達: 최조이), 강량(姜良: 노비 낙선) 같은 처음 듣는 낯선 세례명도 여럿 있다. 이들은 대부분 지금껏 제대로 된 이름을 찾지 못한 상태다.

세례명은 어떻게 정했을까? 세례식을 집전하는 주례자나 해당 신자 본인이 희망하는 삶의 모범을 두어 정하거나, 그의 생일이나 기념일에 해당하는 주보 성인으로 정했을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 부르기 좋은 예쁜 이름을 선호한 경향도 보인다. 당시 성인에 대한 정보는 365일 날짜마다 주보 성인을 정해 생애를 정리, 소개하고 있는 「성년광익(聖年廣益)」의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밖에 「성교일과(聖敎日課)」에 수록된 성인 호칭 기도 속의 명단이 더 있지만, 대부분 「성년광익」과 중복된다. 실제 현재 기록으로 남아 있는 세례명은 칸디다, 우르슬라 등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1794년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기 전까지 10년의 기간 중 초기에는 유일한 영세자인 이승훈이 세례를 주었고, 이후 가성직 제도 아래서는 10인의 신부가 세례명을 정해 주었다. 주문모 신부가 오고 나서 세례는 신부에 의해서만 이루어져, 세례명을 정해준 사람도 주문모 신부였다.

초기 신자들의 세례명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졌을까? 조선은 신분 사회였으니, 해당 성인 성녀의 신분이나 지위가 작명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천한 노비가 교황이나 주교 학자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취할 수는 없었겠고, 나이 들어 입교한 기혼 여성이 젊어서 순교한 동정녀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짓지는 않았을 터이다. 형제가 나란히 세례를 받을 경우, 그에 걸맞은 형제 성인의 이름을 취하기도 했다. 손경윤, 손경욱 형제가 나란히 제르바시오와 프로타시오 치명(致命) 형제의 이름으로 세례명을 삼은 경우가 그렇다.

어쨌거나 「성년광익」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음을 전제한다면, 유추하기 어려운 낯선 세례명 또한 「성년광익」에 수록된 성인 성녀 중 한 사람일 것이 틀림없다. 다만 표기 방식이 생소하고, 조선식 생략과 조선 한자음을 반영한 표기로 인해, 중국과는 동떨어진 형태가 되는 바람에 누구인지 모르게 된 것일 뿐이다. 이 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



은폐의 전략

세례명을 사호(邪號)라 한데서도 보듯, 당시 신자들은 별호의 느낌을 담아 썼다. 신자들은 평소 이름을 부르지 않고 세례명으로 서로를 불렀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입에 붙어 습관이 되었다가 외교인과 함께 있을 때 ‘마리아’ 같은 세례명이 불쑥 튀어나오면 곤란한 상황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겉으로 표나지 않게 글자 수를 줄이거나 우리말 표현에 가깝게 바꿔 불렀다. 별명처럼 편하게 부르다 보면 교우들 사이에 친근감과 결속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얼마간 은폐의 전략도 있었다.

다산 정약용이 1801년 2월 10일, 의금부 국청에 끌려가 심문받을 때, 정약종의 문서 더미에서 나온 편지 중에 ‘정약망(丁若望)’이란 이름이 나왔다. 심문관이 정약망이 누구냐고 따져 묻자, 다산은 “제 일가 중에는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잡아뗐다. 약망은 다산의 세례명인 요한이니, 정약망을 모른다는 말은 내가 나를 모른다는 말과 같았다. 다산은 심문관이 약망이 천주교의 세례명인 줄 짐작치 못하고, 집안의 돌림자인 약(若) 자 항렬의 어떤 사람인 줄 아는 듯하자, 눈썹 하나 까딱 않은 채 명백한 거짓말로 상황을 우선 모면했다. 이때만 해도 심문관의 서학에 대한 지식은 이처럼 어수룩한 구석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호는 두세 글자로 쓰므로, 원래 여러 글자로 된 세례명의 경우 두 글자나 세 글자로 축약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또 서양 이름의 원래 발음을 조선 한자음으로 반영해 글자를 우아하게 교체하거나 호(號) 같은 느낌이 나게 고치는 이른바 아화(雅化) 현상이 생겨났다. 또 오늘날 확인이 어려운 세례명 중에는 의금부나 형조와 포도청의 심문 과정에서 죄인의 진술을 받아 적다가, 들리는 대로 기록하다 보니 바뀐 예까지 포함되어 있어, 초기 교인의 세례명 표기는 실제 이름과 표기 이름을 연결 짓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른다.

먼저 축약과 교체의 경우를 보자. 「추안급국안」의 공초에서 이승훈을 이백다(李伯多), 권일신을 권사물(權沙勿)로 부른 예가 보인다. 백다는 백다록(伯多祿: 베드로)을, 사물은 방제각 사물략(方濟各 沙勿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서 두 글자만 취해 줄여 썼다. 정철상의 공초에는 주문모가 본국에 있을 때 다목이(多木伊) 또는 백다(白茶)로 불렀다고 한 내용이 나온다. 다목이의 ‘이’는 인명 끝에 붙은 접미사다. 다목(多木)은 중국 발음으로 ‘두어무’니 다묵(多: 토마스)과 발음이 똑같다. 다목이는 토마스란 세례명을 조선식으로 바꿔 적은 이름이다. 백다는 백다록(伯多祿)의 앞 두 글자에서 취했지만, 조선식 한자음을 취해 글자를 교체했다. 백다(白茶)는 중국음으로는 ‘바이차’로 읽지만, 여기서는 반드시 ‘백차’가 아닌 속음인 ‘백다’로 읽어야 한다.

결국 정철상의 이 공초는 주문모가 중국에서는 토마스 또는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썼고, 조선에 들어오면서 아각백(雅各伯) 즉 야고보란 세례명을 쓰기 시작했다는 얘기인데, 어떤 의도에서 이렇게 말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사학징의」 중 정인혁의 공초에는 주문모의 세례명으로 ‘약거백(若去白)’이라 표기한 예도 보인다. 이 약거백은 주문모 신부의 세례명 아각백(雅各伯)의 중국어 독법과 조선식 독음이 반반씩 섞여 있는 묘한 방식의 표기다. ‘약거’는 조선음을 취했고, ‘백’은 중국음 ‘보’를 가져와 ‘약거보’로 절충한 형태다.



ᄲᅡ을이와 이로수


한편 중국 현지에서 쓰는 한자 표기 세례명은 알파벳 원어 표기를 중국어 발음으로 음차한 것이어서 우리식 한자음으로는 발음이 어렵거나 기괴한 느낌을 주는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성 이냐시오(Ignatius)를 의납작(依納爵)이라 하고, 티모테오(Timotheus)를 제막득아(弟莫得阿)라 하며, 라자로(Lazarus)를 랄잡록(辣祿)으로 표기하는 따위가 그렇다. ‘납작’이나 ‘막득’ 또는 ‘랄잡’은 조선 한자음으로는 어감이 좋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이름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쓰더라도 글자 수를 줄이거나 한국식 한자음을 반영하여 글자를 바꾸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사정 아래 중국 사람들이 보아서는 가늠조차 안 되는 이상한 표기의 세례명들이 적지 않게 생겨났다.

「사학징의」에 한글로만 적힌 조혜의의 세례명은 ‘ᄲᅡ을이’이다. ᄲᅡ을이란 이름의 성녀는 대체 누구였을까? ᄲᅡ을이는 성녀 ‘바르바라(Barbara)’임에 틀림없다. 한자로는 파이발랄(巴爾拔辣)이라 쓰고 ‘빠을바라’로 읽는다. 빨리 읽으면 ‘빨바라’ 또는 ‘발바라’가 된다. ᄲᅡ을이란 본명은 빠을바라 네 글자에서 앞의 두 글자만 취하고, 여기에 명사형 어미 ‘이’를 붙여 애칭처럼 줄여 부른 것이다. 바르바라는 「성년광익」에 12월 4일의 성녀로 나온다.

별라산 홍지영의 모친이자 강완숙 시모의 세례명인 이로수(二老)도 달리 용례를 찾기 어려워, 그간 추적이 안 된 이름 중 하나다. 이로수는 성녀 아녜스(Agnes), 영어식으로는 아그네스이다. 중국에서는 의닉사(依斯)로 표기한다. 그쪽 음으로 읽으면 ‘이누오스’이고, 이를 줄여 읽으면 이노수가 된다. 이로수는 중국음을 취해 ‘얼라오슈’로 읽어서는 안 되고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어야만 한다. 의닉사라는 이상한 발음보다 이로수라고 써서, 뜻도 점잖고 글자도 평이한데다, 불리는 사람의 나이도 가늠할 수 있는 명칭이 되었다.

이밖에 이제껏 세례명을 특정하지 못한 다른 이름들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마저 살펴보겠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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