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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제대로 해결하라(최예용, 프란치스코, 환경보건학자)

[시사진단]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제대로 해결하라(최예용, 프란치스코, 환경보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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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5 발행 [1610호]



10년 전인 2011년 4월 25일 지금의 질병관리청에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급성 중증 폐렴 임산부 환자의 입원이 증가하는데, 치료가 안 되고 사망률이 매우 높다”는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였다. 신고한 이는 서울아산병원 의사와 사경을 헤매는 산모의 가족이었다. 4개월 후인 8월 31일 ‘산모 사망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유력하게 의심되고, 폐 손상 발병률이 47.3배나 높다’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왔다.

2011년 그해 3월 11일에는 일본 후쿠시마에서 동일본 대지진으로 사망자와 실종자가 2만 명이 넘는 대재앙이 일어났다. 핵발전소가 연이어 폭발했고 지금도 1만 명이 넘는 주민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타향을 떠돌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엊그제 방사능 오염수 수십만 톤을 바다에 버리겠다고 발표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했다. 한국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국제기구에 제소한다지만 그렇게 해서 일본의 결정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슷한 시점에 발생했지만 지난 10년간 전혀 무관하게 진행되어온 두 가지 참사, 한국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일본 후쿠시마 쓰나미는 사망자가 각각 2만 명으로 매우 흡사하다.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제품노출자가 894만 명, 건강피해경험자가 95만 명, 사망자가 2만 명으로 추산된다는 조사결과가 학술논문으로 발표됐다. 끔찍하고 몸서리쳐지는 동시에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아득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7년 되는 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안타깝다, 끝까지 챙기겠다’, 그리고 뭐라고 했다는데 때가 되니 한마디 했을 뿐으로만 들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세월호 피해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계속 농성해야 할 정도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4월 초 보궐선거에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참패했다. 선거 훨씬 전부터 여론조사는 그들의 패배를 거듭해서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설마’ 했고, 이변은 없었다. 선거 참패 후 여당 지도부가 사퇴하고 총리, 장관 그리고 청와대 비서관들의 교체로 정부ㆍ여당이 민심을 받든다고 했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라 모두 시큰둥하다. 이대로라면 촛불 혁명이 만들어낸 정부는 용두사미로 끝나고 촛불 정신은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잊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기재부 국장으로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며 피해지원을 위한 예산을 삭감하는 데 앞장섰던 자가 이번에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작년 말 사회적 참사특별법을 개정하면서 가습기 살균제 진상규명 기능을 삭제하는 데 앞장섰던 민주당 정책위원장은 환경부의 수장이 되었고 그는 지금 사회적참사특조위를 무력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나마 법에 명시된 피해대책과 재발방지를 위한 안전사회의 조사 기능과 청문회 기능마저도 못한다고 특조위를 윽박지르고 있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가 환경부를 통해 사회적참사특조위의 가습기 살균제 관련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은 박근혜 정부가 해수부를 통해 세월호특조위를 무력화시킨 상황을 연상케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이렇게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가는 걸까? 사회적참사특조위가 부족하지만 나름의 조사를 통해 환경부 등 여러 정부부처의 책임을 묻는 조사의 칼끝을 겨누어가자 문재인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는 관료들이 이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국회에서 다수의석을 밀어준 국민의 실망이 더 깊어져 회복하기 어려운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문재인 정부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기업들에 피해자 배ㆍ보상을 하도록 하고, 정부기관 관료들의 책임을 확인해 사죄토록 하는 사회적, 법적 해결의 길이자 촛불 정신의 길로 돌아올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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