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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전통주 빚으며 성숙해진 기도의 삶

향긋한 전통주 빚으며 성숙해진 기도의 삶

[타인의 삶] 장인정신 양조장 이진태(루도비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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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5 발행 [1610호]
▲ 장인정신 이진태 대표.



수습기자 시절 한 선배가 해준 말이 기억난다. 평소 술을 잘 먹지 않았던 그 선배는 기자와 동기에게 술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술은 좋은 사람과 마시면 약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독이 된다. 그런데 오늘은 술이 참 달다.”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일 수 있지만, 술은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좋은 사람과 함께 했을 때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물론 그 즐거움은 술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즐거움이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즐거움을 만들어 파는 남자, (주)장인정신 이진태(루도비코) 대표를 만났다.



커다란 술독 속으로

새벽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는 서울 용산역을 출발해 내달렸다. 차창 밖으로는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 오는 날이다. 애주가들의 표현을 빌리면 “술 마시기 좋은 날”이다. 술 마시기 좋은 날, 술 만드는 곳으로 향했다.

서대전역에서 기차를 갈아탄 후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위치한 연산역에 내렸다. 인적이 드문 자그마한 시골역에서 차로 10여 분을 달렸을까, 멀리 양조장이 보였다.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 장인정신 양조장이 있다. 장인정신 양조장은 막걸리를 만드는 곳이다. 물이 맑은 곳에 양조장이 있다니. 맑은 물로 빚은 막걸리는 맛보지 않아도 좋을 게 뻔하다.

양조장 취재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심이 담긴 취재이기도 하다. 설렘과 호기심을 안고 양조장 문을 열였다. 문을 열자마자 양조장답게 술 냄새가 가득했다. 마치 커다란 술독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술 냄새 뒤로 작업복 차림의 이진태 대표가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이 대표의 안내를 받아 술독 속으로 들어갔다.


▲ 이진태 대표가 고두밥을 옮겨 담아 식히고 있다.



▲ 이진태 대표가 밑술 작업을 하기 위해 고두밥과 누룩을 섞고 있다.



한 달, 술이 익어 가는 시간


양조장 내부로 들어서니 커다란 술독들이 가득하다. 술독을 덮은 천을 걷어보니 빚은 지 3~4일 된 술에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온다. 빚은 지 3주가 된 술은 청주와 탁주가 완전히 분리돼 있었다. 술이 거의 다 익었다는 표시다. 이 대표의 권유로 술독에서 술을 직접 떠서 맛을 보는 영광을 누렸다. 빚은 지 3~4일 된 술의 맛은 다소 거칠었고 알코올 향이 강했다. 하지만 빚은 지 3주가 된 술은 알코올 도수가 15~16도이지만 알코올 향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맛이었다. 이 대표가 빚은 지 한 달이 지나 완성된 막걸리를 들고 와 한잔 권했다. 식감은 시중에 파는 막걸리와 달리 걸쭉하고 텁텁했다. 마신 뒤에는 누룩이 만들어 낸 묘한 흙내음이 났다. 시음 중에 이 대표가 말했다. “술을 조금 맛봐서는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꿀떡꿀떡 마신 후 다시 코로 넘어오는 향을 느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죠.” 제대로 느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일정을 위해 잔을 내려놨다.



쌀과 누룩이 술이 되기까지

이 대표는 일주일에 두 번 술을 빚는다. 술을 빚는 것은 밥 짓는 것부터 시작한다. 먼저 국내산 유기농 쌀을 깨끗이 씻은 후 고두밥을 지어 식힌 다음 술독에 옮겨 담는다. 다음은 누룩을 넣는데 누룩은 전통방식에 따라 자연 발효시켜 만든 우리밀 떡누룩을 쓴다. 누룩은 쌀 양의 10%를 넣는다. 감미료나 인공 향, 첨가물은 넣지 않는다

밥과 누룩을 넣고 나면 물을 넣고 밥과 누룩이 잘 섞이도록 저어준다. 이렇게 만든 술을 밑술이라고 하는데 밑술을 만들어 1차로 3~4일 정도 발효시킨다. 밑술이 발효되면 또다시 고두밥과 함께 물을 넣고 버무린 뒤 덧술을 만들어 한 달 정도 발효시킨다. 이처럼 밑술에 덧술 과정을 거쳐 만드는 술을 이양주라고 한다. 한 달 정도가 지난 술을 거른 후 물을 넣어 알코올 도수를 맞추고 나면 막걸리가 식탁으로 올라간다. 이 대표는 “알코올만 들었다고 해서 술이 아니다. 시간과 정성, 좋은 재료가 제대로 어우러져서 숙성돼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며 “그 맛이 전통주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 술을 빚은 지 3주가 지나면 청주와 탁주가 분리된다.



▲ 장인정신에서 판매하는 찹쌀막걸리와 땅콩막걸리, 맛술 '미온' (왼쪽부터).



3보(寶) 3계(戒)

이 대표가 추구하는 전통주 생산철학은 3보 3계다. 먼저 세 가지를 귀하게 여긴다는 3보는 정신과 장인, 법식이다. 베풀고 모시는 마음으로 술을 빚고, 기술력과 우직함, 섬세함, 일관성, 지속성을 갖추며 전통주 빚는 원칙을 지켜나간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세 가지를 경계한다는 3계는 욕심과 조급, 태만이다. 재료비 원가를 아끼지 않고 주원료는 유기농 쌀을 사용한다. 돈만 추구하는 장사꾼이 되지 않고 정직하게 일하며 소비자를 속이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로 술 빚기에 임한다. 빚는 기간을 준수하고 곡물과 식물에서 발효된 맛과 향을 내며 첨가물로 인위적인 맛을 내지 않는다. 잘못을 답습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선한다.

“술은 제 손으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거든요. 물론 손맛도 중요하지만, 미생물을 통해 발효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연과 소통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제대로 된 술이 나오지 않습니다.”



전통주의 매력에 빠지다


이 대표는 대학 졸업 후 회사 생활을 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이 맞지 않아 이직을 반복했다. 그러다 우연히 옥미주라는 전통주를 접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전통주에 흠뻑 빠지게 됐다.

회사를 그만두고 1994년 전통주 도매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전통주를 파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많이 팔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에서 전통주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전통주 교실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됐고 본격적으로 전통주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이 대표는 2000년부터 전통주를 공부하고 만들고 재현도 하며 사람들에게 강의도 했다. 하지만 생계유지가 힘들었다. 그래서 직접 술을 빚어 판매하자는 생각으로 2010년 장인정신을 창업해 2011년부터 한살림에 납품하고 있다. 장인정신이라는 이름은 이 대표가 지었다. “제가 장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항상 장인정신을 갖고 술을 만들겠다는 마음에서 지었습니다.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나약해지고 게을러지거든요.”



인생의 나침반


이 대표에게 있어서 술은 ‘인생의 나침반’이다. “양조장을 시작하기 전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또 가장으로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온 힘과 자존심이 완전히 추락하고 나서 다 놓아버리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기도 덕분인지 그 이후에 일이 잘 풀리고 오늘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 대표는 “저를 깨어있게 하시고 노력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전통 방식은 고수하면서 젊은 사람들 입맛에 맞는 술을 만드는 게 목표다. 미국 뉴욕에 있는 식당에 술을 납품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술에 있어서 이 대표가 반드시 지키고 강조하는 건 바로 술에 대한 절제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과하면 좋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가시와 독이 있다고 생각해요.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나는 것처럼요. 술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절제가 필요해요.”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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