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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사람 그리고 사진] 어머니를 만나는 시간

[임종진의 사람 그리고 사진] 어머니를 만나는 시간

임종진 스테파노(사진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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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5 발행 [1610호]



세상을 두루 떠다니기에 주저함이 없던 때가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상을 묶어놓기 직전까지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다른 이들의 삶 가까이 다가가 머물곤 했다. 주로 다니는 곳이 흔히 말하는 개발도상국들이었고 통상적인 여행이라기보다는 나름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 이를 사진으로 가시화시키려는 일종의 접속적 행위라 스스로 여기던 때였다. 아프리카 르완다를 비롯해 캄보디아, 인도, 인도네시아, 티베트, 네팔 등등 오고 간 나라의 수도 적지는 않다. 그 걸음들 틈틈이 나도 모르게 수많은 어머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라는 수식을 쓴 이유는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할머니를 바라보는 일이 이 접속행위의 원래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즉흥적이거나 우연한 인연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가까이 앉아 숨을 교환하면서 나직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곤 했다. 마주한 이의 음성에는 당신의 살아온 세월이 실려있었고 남루한 외양이 얹힌 몸짓에는 인생의 흐름이 담겨 있었다. 낯선 이방인의 섣부른 걸음 앞에 그들은, 어머니들은 한없이 넓은 가슴을 품으로 내어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 품이 어찌나 따사롭던지 종종 가던 길을 멈추어 선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앉아있기를 주저하지 않던 날들이 적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의 어머니들을 나의 어머니로 만나는 일이었다.

여민 옷 틈새로 늙어 축 처진 가슴에서 한세월을 견딘 위대한 삶을 보았고, 볏짚과 나뭇가지를 머리에 인 모습에서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 가슴으로 어린 자식들을 먹이고 키워내셨을 것이고, 그 몸짓으로 노동의 가치를 일구어내셨을 터였다. 그렇게 세상 속 어머니들을 만날 때마다 웃거나 울었다. 타인의 당신이 아니라 나의 ‘엄마’를 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애잔하고 뭉클했으며 안쓰럽다가도 지극히 아름다워 하염없이 고개를 숙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네팔의 한 시골길에서 우연히 만났던 어느 어머니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내 앞에서 머리를 쓸어올리며 씨익 웃어주시던 당신은 정말이지 너무도 아름다웠다. 여전히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염원도 슬쩍 품어본다.

3년 전 사랑하는 엄마를 여읜 탓일까. 다시 세상의 어머니들을 만나러 나가고픈 생각에 안타깝게 발을 동동 구르는 요즘이다. 내 엄마를 바라보듯 누군가의 귀한 어머니들을 살포시 품어 바라보고 싶은 탓이다. 모두가 내 엄마이니 외면하지도 가벼이 스치거나 겉모습만 거두어 올 생각은 전혀 없다. 바이러스에 묶인 발을 기분 좋게 풀 날이 곧 오지는 않을까. 어머니와 마주할 또 다른 하루를 기대하면서 오늘도 얼굴 가득 미소를 띄워본다.

▲ 임종진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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