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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천국 문턱까지 갔던 정 추기경, 사랑 남기고 떠나

잠시 천국 문턱까지 갔던 정 추기경, 사랑 남기고 떠나

정진석 추기경, 죽음을 준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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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2 발행 [1611호]

▲ 정진석 추기경의 운구행렬이 4월 27일 밤 주교좌 명동대성당에 들어가고 있다.



“하느님 안에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하느님 믿고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을 갖고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의 길입니다. 기도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늘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2월 입원 후 여러 차례 고비

정 추기경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한 것은 2월 21일 주일이었다. 몸에 통증이 찾아온 탓이었다. 정 추기경은 앞서 수술은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연히 입원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또 다른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입원을 결정했다.

정 추기경은 입원 후 여러 차례 고비를 넘겼다. 병원에서 급한 호출로 염수정 추기경과 보좌 주교들, 사제들이 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2월 28일 저녁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지금 선종 직전입니다’라는 의료진의 문자를 받기도 했다.

입원 9일째인 3월 1일.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의료진은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취재진에게 “오늘은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허영엽 신부도 “미사 후 맥박, 산소 포화도, 혈압 등이 일제히 떨어졌다”고 전했다. 사제와 수도자들은 병실을 찾아 정 추기경을 위해 기도했다. 다른 환자였더라면 여러 번 응급조치를 해야 했던 상황. 하지만 정 추기경에 대한 응급조치는 일절 없었다. 정 추기경이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했기 때문이었다.



통장 잔액은 모두 명동밥집 등에 기부

정 추기경은 그동안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2018년 9월 27일 연명 의료계획서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했고 2006년 자신이 서약한 뇌사 시 장기기증과 사후 각막기증이 진행될 수 있도록 의료진에게 부탁했다. 만약 나이로 인해 장기기증이 효과가 없다면 안구라도 기증해 연구용으로 사용해 줄 것을 연명계획서에 직접 글을 써 청원했다. 2021년 2월 25일에는 자신의 통장에 있는 잔액을 명동밥집과 아동 신앙 교육 등을 위해 써달라고 봉헌했다.

정 추기경의 뜻에 따라 의료진은 수액만을 남긴 채 모든 약물 투여를 중단했다. 이 경우 ‘2시간을 넘기기 힘들다’는 의료진의 소견에 따라 염 추기경과 보좌 주교들, 사제들은 정 추기경 침대에 둘러서서 임종기도를 바쳤다.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전면에 선종 휘장을 걸고 유리관을 준비하는 등 장례절차에 들어간 상태였다. 당시 SNS에는 정 추기경이 선종했다는 가짜뉴스가, 신자들 사이에서는 정 추기경 선종 문자와 추모 메시지가 떠돌기도 했다.

그런데 임종기도를 바친 지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큰 변화는 아니지만, 수치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정 추기경이 아주 위험한 상황은 넘겼다”고 했다. 다음날인 3월 2일. 의료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조금씩 수치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놓긴 일렀다. 3월 5일. 피검사 결과 정 추기경의 상태가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이전의 사례들과 너무 달라 의료진조차 설명할 수 없는 결과였다. ‘기적’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의료진은 실제로 ‘기적’이라고 했다. 정 추기경의 상태가 호전되자 명동대성당은 장례를 위한 모든 것들을 철수했다. 사제와 수도자, 의료진들은 기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적’같이 상태 호전됐으나

고비를 넘긴 후 정 추기경은 의사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정 추기경은 며칠 동안의 긴 잠에서 깨어나 “천국 문턱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병실을 찾은 사제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의식이 없으시다가도 미사를 봉헌하실 때는 늘 눈을 뜨셨어요. 그리고 성체를 꼭 영하고 싶어 하셔서 못 영하실 때는 입에 살짝 대드리거나 넣어 드리는 것도 좋아하셨어요.” 정 추기경의 비서였던 조영관 신부는 “추기경님이 미사 때는 의식이 돌아와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의료진의 팔을 잡은 정 추기경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들렸다. 조심스럽지만 일각에서는 정 추기경의 치료 방향을 ‘회복’ 쪽으로 잡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추기경의 상태로 봐서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정 추기경의 상태가 호전된 것은 사제와 수도자, 의료진들의 기도와 노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 추기경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정 추기경은 고비를 넘긴 후 퇴원할 정도는 아니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작별인사

하지만 4월 26일 정 추기경의 병세가 다시 나빠졌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4번째 고비였다. 수치가 다시 나빠졌다. 서울성모병원 영성부원장 이요섭 신부는 “수치는 안 좋지만 몇 번의 고비를 넘긴 건 정 추기경의 의지가 강한 것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고 했다.

4월 27일 밤 9시 32분, 주치의 김영균(프란치스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가방을 들고 정 추기경이 입원 중인 병실에 들어갔다. 추기경의 용태를 살핀 김 교수는 20분 뒤, 복도에서 대기하던 취재진에게 “몇 시간 내로 선종하실 것 같다. 오늘 밤을 안 넘기실 것 같다”고 말했다. 9시 58분 병실을 찾은 김용식(안드레아) 서울성모병원장도 “혈압과 맥박이 좋지 않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료진이 분주한 가운데 밤 10시 12분, 염수정 추기경과 총대리 손희송 주교가 도착했다. 그리고 3분 뒤인 10시 15분, 정 추기경이 선종했다. 사인은 복부 대동맥류 파열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 병실에 있던 인원은 마지막으로 고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밤 10시 18분, 고인의 안구 적출을 위해 안과 의료진이 병실에 들어왔다. 서울성모병원 안센터장 양석우(라파엘) 교수와 레지던트 전공의ㆍ안은행 담당자다. 안구 적출을 마친 양 교수는 취재진에게 “추기경님 뜻에 따라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소임을 다한 정 추기경의 시신에는 흰 제의가 입혀졌다. 이어 병실에 있던 의료진과 사제ㆍ수도자들은 주모경을 바치며 추기경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누리길 기원했다.



도재진 기자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 애도 메시지


정진석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합니다.

한국 천주교의 큰 언덕이며

나라의 어른이신 추기경님이 우리 곁을 떠나

하늘나라에 드셨습니다.

참으로 온화하고 인자한 어른이셨습니다.

서른아홉 젊은 나이에 주교로 서품되신 후,

한평생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평화를 주신 추기경님의 선종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추기경님은 ‘모든 이를 위한 모든 것’이란

사목표어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실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나눔과 상생’의

큰 가르침을 남겨주셨고, “가장 중요한 것은

돈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정책”이란 말씀은

국민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추기경님, 지상에서처럼 언제나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 국민과 함께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추기경님의 정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영원한 평화의 안식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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