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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서로에게 천사가 되는 순례길
우연히 마주친 서양 순례자들과 한참을 같이 이야기하며 걸었습니다.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요.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함께 걸었던 그 친구들이었습니다. 다짜고짜로 “레인보우, 레인보우”를 외치며 저를 이끌었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쌍무지개를 담았습니다. 이렇게 순례자들은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줍니다. 그래서 다들 순례 중에 천사를 만난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는 것은 순례길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가능한 일입니다. 새해에는 자주 천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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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함께하면서도 따로 하는 지혜
혼자 길을 걷더라도 가는 곳, 겪는 것, 추구하는 바가 같으니 순례자들은 쉽게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일행이 되어 함께 가더라도 걷고 쉬고 먹는 것을 항상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생각과 동기와 신체 상태 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혼자 가도 함께 가고, 함께 가도 혼자 간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가끔 함께 하다가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를 봅니다. 지나치게 기대하거나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순례를 하노라면 함께 하면서도 따로 하는 지혜를 터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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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악천후에도 우리가 가야 할 길
철 지난 눈과 함께 세찬 비바람까지 몰아치는 눈보라를 만났습니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세찬 바람에 다들 서로 팔짱을 끼거나 부둥켜안고 함께 걸어야 했습니다. 일부는 넘어져 다치기도 했고, 되돌아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국내에서의 악천후 산행 경험이 많았기에 당황하는 일행을 다독여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악천후 속에서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는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순례를 통해 많은 사람이 자기 인생의 화살표를 찾거나, 찾으려고 애를 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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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햇볕 뒤로 짙게 낀 구름
길을 걷다 보면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는 햇볕이 쨍쨍 내리쪼이는데 조금 떨어진 저곳에서는 짙게 낀 구름 아래로 철 지난 눈이 내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순례길은 눈 내리는 저곳을 지나야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렸다가 가야겠지만 일정상 그리 여유를 부릴 형편이 되지 않아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이 또한 축복입니다. 좀처럼 오기 힘든 곳이니 한 번 왔을 때 좋고 궂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한꺼번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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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설렘과 불안이 겹친 순례길
프랑스 길의 출발점인 ‘생 장 삐에 드 뽀흐’에서 시작하여 피레네를 넘는 첫날입니다. 해발고도 200m에서 시작하여 1430m까지 올랐다가 다시 900m로 내려가니 고도 변화가 심한 날입니다. 변화가 심한 것은 고도만이 아닙니다. 산이 높으니 맑다가 흐렸다가, 또 어느 순간엔 일부분에만 햇빛이 비쳐 사진과 같이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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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재를 시작하며
산티아고 순례를 세 번 다녀왔습니다. 처음엔 포르투갈 길, 그리고 두 번은 프랑스 길. 야고보 사도의 성해가 있는 산티아고(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발음) 대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은 큰길만도 10여 개가 됩니다. 그중 가장 많은 순례자가 걷는 799㎞ 프랑스 길(2018년: 약 33만 명 중 60%)에서 제가 만났던 풍경들을 앞으로 6개월간 가톨릭평화신문 독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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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아이
한 마을의 역사와 품격은 아름드리 숲이다. 크나큰 고난을 뚫고 온 장엄한 세월의 나무, 그 나무와 함께 사람은 깊어진다. 그 나무에 기대어 아이들은 자란다. 나는 나무의 아이, 나무는 나의 성전. 내 등 뒤에서 또 다른 아이들이 걸어오고 나무들은 무언가 비밀스런 삶의 이야기를 바람의 속삭임으로 전해주리라. 박노해 가스파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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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할머니가
긴긴 세월 부부가 함께 끌어온 수레바퀴.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 혼자서는 바퀴를 굴릴 힘이 없지만 그래도 도와주는 손길이 있다. 슬픈 얼굴로 바라보는 내게 할머니는 오렌지 세 알을 쥐어주며 등을 토닥인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선하고 의롭게 살아온 이에겐 세상 끝에서도 친구가 기다리니. 자신을 잃지 말고, 믿음을 잃지 말고 그대의 길을 걸어가라.’ 박노해 가스파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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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속도로
길에서 묻는다. 좋은 길이란 어떤 길인가. 방에서 방으로, 점에서 점으로 가는 최단 거리 길인가. 다양한 생명과 다양한 탈것들이 자기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오가는 길인가. 인간이 추방되고 동물이 추방되고 짐수레와 마차와 자전거와 유모차와 순례자와 내 두 발이 추방된 독점의 길. 좋은 길이 없는 좋은 삶이란 없다. 박노해 가스파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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