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비추어라

제14회 평신도가 바라 본 한국교회의 새로운 복음화 - 정치우 안드레아 (방준위 영성분과위 간사)

재생 시간 : 42:46|2014-10-22|VIEW : 1,585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복음화는 예수님의 선교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쁨 19항)” 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교회공동체로서의 사명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복음화는 예수님의 유언인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예수님이 인류의 유일한 그리스도 즉, 구세주요,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서구세계가 복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복음화는 예수님의 선교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쁨 19항)” 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교회공동체로서의 사명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복음화는 예수님의 유언인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예수님이 인류의 유일한 그리스도 즉, 구세주요,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서구세계가 복음화라는 단어에 새(New)라는 단어를 포함시켰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고, 복음적 삶을 살고, 복음의 문화를 이루고 살던 교회공동체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고, 그 현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다시 복음적 삶으로 돌아오도록, 새로운 복음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서구사회의 신자들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 생겨난 세속주의, 극도의 이기주의, 황금 만능주의, 이러한 현상에 따른 상대주의 등 복음적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많은 요소들을 접하면서 세상에 안주하며 세속적 삶 안에서 인간의 참 행복을 찾으려고 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인간성의 상실과 하느님 부재의 삶을 통해 나타난 결과인 자연파괴와 그리고 영적 메마름 등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복음을 통한 참 행복과 기쁨을 되찾게 하고자 하는 것을 새로운 복음화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나 보다 큰 의미에서 보면 새로운 복음화는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고 복음적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첫 번째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과, 두 번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는 하지만, 교회공동체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복음적 삶에 근접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통한 참 기쁨과 구체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초대하는 모든 활동이 새로운 복음화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 번째는 이미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는, 이 사회에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 가지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하느님의 정의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복음화, 새로운 영성운동은 이와 같은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면서 출발해야 합니다. 교황님 방한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출발은 우리 자신을 바로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좋은 집을 지으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아직 그리스도교 역사가 일천한 한국교회에서, 그것도 현재 신자의 80%이상이 세례를 받은지 40년 미만인, 즉 신앙의 뿌리가 내려져 있지 않은 현재의 우리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복음화를 위한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거나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삶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신자들 모두를 복음으로 무장시키고, 선교할 수 있는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그들 중 몇몇 사람만을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공동체 전체가 선교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교구와 본당에서는 끊임없이 선교하는 제자들을 양성해 가야 합니다. 복음 선포는 교회의 과업입니다. 따라서 교회공동체의 일원이라면 모두가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의 사명이요 의무입니다.

둘째, 이미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 신자들 중 복음적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복음의 참 기쁨이 그들의 삶이 되도록 교회는 끊임없이 배려하고, 기도하고, 그들이 복음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 스스로가 복음적 삶을 위해 스스로 회개하고, 개혁과 쇄신을 추구해 가야 합니다.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과감하게 개혁해야 합니다. 교육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라면 과감하게 교육의 내용과 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현재의 신자들마저도 잃지 않게 됩니다.

한국 천주교회가 80년대 성인 요한바오로2세 교황님의 방한이후 끊임없이 복음화율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부터는 많은 신자들이 냉담하고 있고, 그나마 남아있는 신자들 중에는 신앙의 신비, 신앙의 참 맛을 보지 못한 채 습관적이고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에서 “때는 시간보다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현재 인구대비 10%대의 한국천주교회 신자들이 성장하느냐, 아니면 침체하느냐 하는 것을 그냥 바라만 보면 안 됩니다. 시간이 해결하겠지 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금이 때입니다. 지금이 다시 일어설 때입니다.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셋째는 사회의 복음화입니다. 현재 한국사회는 여러 측면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의 불균형으로 인해 생겨난 갖가지 어두운 그늘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상적 대립으로 빚어진 극단적 행동과 그 결과로 생겨난 분열 현상 등,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뿐입니까?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치유하고 극복해야하는 것이 새로운 복음화의 과제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은 특정한 나라, 특정한 그룹,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복음화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을 통하여 기쁘게 살라고 하셨으며, 그 기쁨은 복음적 삶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참 좋다”라며 기뻐하셨습니다(창.1:31). 그 기쁨이 인간에게 스며들기 시작하여 하느님과 함께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기쁨의 역사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성경에 나온 최초의 인물인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서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1250년경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의 기쁨, 그리고 예루살렘에 성을 짓고 성전을 건설하여 계약의 궤를 안치한 후 다윗왕은 기쁜 나머지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이런 다윗왕의 모습에 대해 사무엘 하권(2사무. 6:14)에서는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 역대기 상권에서는 “껑충껑충 뛰며 춤을 추었다.”(1역대 15:9)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쁨의 역사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신약에 와서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까 1:28)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들판의 목자들에게도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까 2:10)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립 4:4) 그렇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이며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은 기쁜 소식의 증인이요, 전달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기쁨으로 가득하고 언제나 기뻐할 줄 압니다.” (복음의 기쁨 24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복음을 살아가는 공동체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표현과 새로운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교회본연의 모습을 되찾고자하는 교회의 노력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 새로운 복음화는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며, 그래서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표현과 새로운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해왔던 많은 내용과 방법들을 새롭게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도전이며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삶에 맞서 새로운 삶으로의 도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늘 일상생활에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습니다. 그것이 힘이 들어 도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인생의 실패자가 됩니다. 도전은 위험과 모험이 뒤따르며 그렇기 때문에 당당하게 응해야 합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도전에 우승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승자는 또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자에게 도전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자신의 일에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더 효율적인 방법 더 좋은 성적을 얻고자 합니다. 더 발전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삶의 영역 안에서 이와 같은 도전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