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0 | 4
나무의 아이
한 마을의 역사와 품격은 아름드리 숲이다. 크나큰 고난을 뚫고 온 장엄한 세월의 나무, 그 나무와 함께 사람은 깊어진다. 그 나무에 기대어 아이들은 자란다. 나는 나무의 아이, 나무는 나의 성전. 내 등 뒤에서 또 다른 아이들이 걸어오고 나무들은 무언가 비밀스런 삶의 이야기를 바람의 속삭임으로 전해주리라. 박노해 가스파르(시인)
04-30 | 1
혼자 남은 할머니가
긴긴 세월 부부가 함께 끌어온 수레바퀴.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 혼자서는 바퀴를 굴릴 힘이 없지만 그래도 도와주는 손길이 있다. 슬픈 얼굴로 바라보는 내게 할머니는 오렌지 세 알을 쥐어주며 등을 토닥인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선하고 의롭게 살아온 이에겐 세상 끝에서도 친구가 기다리니. 자신을 잃지 말고, 믿음을 잃지 말고 그대의 길을 걸어가라.’ 박노해 가스파르(시인)
04-30 | 1
저마다의 속도로
길에서 묻는다. 좋은 길이란 어떤 길인가. 방에서 방으로, 점에서 점으로 가는 최단 거리 길인가. 다양한 생명과 다양한 탈것들이 자기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오가는 길인가. 인간이 추방되고 동물이 추방되고 짐수레와 마차와 자전거와 유모차와 순례자와 내 두 발이 추방된 독점의 길. 좋은 길이 없는 좋은 삶이란 없다. 박노해 가스파르(시인)
04-30 | 3
키 큰 나무 사이로
키 큰 나무 사이를 걸으며 나는 울었다. 내가 너무 작아서, 내가 너무 약해서, 키 큰 나무 숲은 깊고 험한 길이어서. 키 큰 나무 사이를 걸으며 나는 웃었다. 내 안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강하고 고귀한 내가 있었기에. 키 큰 나무 사이를 걸으며 나는 알았다. 키 큰 나무 사이를 걸어온 사람이 키 큰 나무 숲을 이루어간다는 걸. ‘키 큰 나무 사이를 걸으니 내 키가 커졌다.’ 박노해 가스파르(시인)
04-30 | 4
낙타가 간다
‘사막의 배’라 불리는 낙타는 아브라함 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사막과 광야와 고원의 동행자이다. 길 없는 길을 누가 가는가. 낙타가 간다. 자신을 위한 먹이도 물도 없이 누가 가는가. 낙타가 간다. 낙타가 사막의 가시 돋친 낙타초를 씹으며 노을 속에 무릎을 꿇고 먼 곳을 바라볼 때 나 또한 가야만 할 먼 길을 바라본다. 박노해 가스파르(시인)
04-30 | 5
브로모 화산의 농부
화산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브로모 화산. 눈부신 운무 사이로 칼데라의 아침이 열리고 브로모의 농부는 대지에 뿌리박은 삶의 당당한 걸음으로 저 높은 밭으로 향한다. 누구도 무시하지 않고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등뼈를 곧게 세우고 세상을 걸어간다. 박노해 가스파르(시인)
04-30 | 4
고립된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점령하고 분리장벽을 세워 모든 길과 길을 끊어놓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기 땅에 갇힌 수인처럼 학교를 갈 때도 병원과 직장과 친척 집을 갈 때도 총구가 번득이는 긴 감시로를 걸어가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 길을 끊고, 발을 묶고, 서로를 고립시키는 것만큼 큰 죄악이 있을까. 박노해 가스파르(시인)
04-30 | 5
아침은 짜이 한 잔
인도의 아침은 짜이 한 잔으로 시작한다. 모닝 짜이를 마시지 않는 아침은 산 날이 아니다. 오늘 하루 인생을 시작하기 전, 깊은 숨을 쉬며 심신을 가다듬는 생의 의례. 아침 태양이 비추는 나무 아래 카페에, 일단 앉아라. 짜이를 마셔라. 인사하라. 한 번 웃어라. 그러면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니. 박노해 가스파르(시인)
04-30 | 6
국경의 강
이 강이 국경이다. 타이와 버마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모에이 강. 오랜 군부독재와 내전으로 버마에서 쫓겨나온 난민들의 삶터이자 민주 청년들과 소수민족 해방군의 피와 눈물이 흐르는 국경의 강. 빨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카렌족 난민 여인들의 노랫소리가 강물처럼 흐르며 국경의 긴장을 녹인다. “어려울 때도 좋을 때도 우리는 웃음 지어요.” 가난하다고 웃음마저 가난하겠는가. 고난이라고 인정마저 빼앗기겠는가. 박노해 가스파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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