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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출의 황홀경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을 받으러 가는 시간입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어디 막히는 것 없는 넓디넓은 벌판에서 해님이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가슴은 마구 쿵쾅거리고 발걸음은 얼어붙어 버립니다.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이 사라집니다. 그저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져듭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잊어버립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이내 또 무아경에 이릅니다. 순례길에서 느끼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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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 년의 역사 품은 순례길 마을
전형적인 순례자 마을입니다.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가는 순례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순례자 숙소와 식당, 교회와 가게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순례자 숙소는 공립은 하룻밤에 우리 돈 1만 원 미만, 사립은 그 배 정도입니다. 식당도 순례자에게 일반인 대비 약 1/2~1/3 정도 가격에 맛좋고 양 많은 식사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많은 성당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저녁 미사를 봉헌하고, 작은 기념품까지 선물해주기도 합니다. 순례자에 대한 친절과 배려는 바로 천 년이 넘는 순례길 마을의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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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서로에게 천사가 되는 순례길
우연히 마주친 서양 순례자들과 한참을 같이 이야기하며 걸었습니다.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요.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함께 걸었던 그 친구들이었습니다. 다짜고짜로 “레인보우, 레인보우”를 외치며 저를 이끌었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쌍무지개를 담았습니다. 이렇게 순례자들은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줍니다. 그래서 다들 순례 중에 천사를 만난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는 것은 순례길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가능한 일입니다. 새해에는 자주 천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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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함께하면서도 따로 하는 지혜
혼자 길을 걷더라도 가는 곳, 겪는 것, 추구하는 바가 같으니 순례자들은 쉽게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일행이 되어 함께 가더라도 걷고 쉬고 먹는 것을 항상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생각과 동기와 신체 상태 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혼자 가도 함께 가고, 함께 가도 혼자 간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가끔 함께 하다가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를 봅니다. 지나치게 기대하거나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순례를 하노라면 함께 하면서도 따로 하는 지혜를 터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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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악천후에도 우리가 가야 할 길
철 지난 눈과 함께 세찬 비바람까지 몰아치는 눈보라를 만났습니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세찬 바람에 다들 서로 팔짱을 끼거나 부둥켜안고 함께 걸어야 했습니다. 일부는 넘어져 다치기도 했고, 되돌아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국내에서의 악천후 산행 경험이 많았기에 당황하는 일행을 다독여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악천후 속에서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는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순례를 통해 많은 사람이 자기 인생의 화살표를 찾거나, 찾으려고 애를 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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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햇볕 뒤로 짙게 낀 구름
길을 걷다 보면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는 햇볕이 쨍쨍 내리쪼이는데 조금 떨어진 저곳에서는 짙게 낀 구름 아래로 철 지난 눈이 내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순례길은 눈 내리는 저곳을 지나야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렸다가 가야겠지만 일정상 그리 여유를 부릴 형편이 되지 않아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이 또한 축복입니다. 좀처럼 오기 힘든 곳이니 한 번 왔을 때 좋고 궂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한꺼번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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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설렘과 불안이 겹친 순례길
프랑스 길의 출발점인 ‘생 장 삐에 드 뽀흐’에서 시작하여 피레네를 넘는 첫날입니다. 해발고도 200m에서 시작하여 1430m까지 올랐다가 다시 900m로 내려가니 고도 변화가 심한 날입니다. 변화가 심한 것은 고도만이 아닙니다. 산이 높으니 맑다가 흐렸다가, 또 어느 순간엔 일부분에만 햇빛이 비쳐 사진과 같이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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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재를 시작하며
산티아고 순례를 세 번 다녀왔습니다. 처음엔 포르투갈 길, 그리고 두 번은 프랑스 길. 야고보 사도의 성해가 있는 산티아고(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발음) 대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은 큰길만도 10여 개가 됩니다. 그중 가장 많은 순례자가 걷는 799㎞ 프랑스 길(2018년: 약 33만 명 중 60%)에서 제가 만났던 풍경들을 앞으로 6개월간 가톨릭평화신문 독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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