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당신이 여전히 그립습니다

#추기경이 세상에 남긴 것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2009년 2월 16일, 하느님 품으로 떠난 이 시대의 큰 목자 김수환 추기경은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유언으로 보기엔 너무나 단순한, 어린아이라도 할 수 있는 이 한마디는 지금도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추기경의 유언에는 창조주 하느님과 주변에 감사와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라는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추기경의 시선은 언제나 예수님의 시선을 닮아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웃과 병든 이들, 사회의 그늘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들에게 한없이 마음을 쏟았습니다.

반대로 권력자와 부자, 힘이 센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오만과 그릇된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가진 것을 나누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당부했습니다.

오염된 강물을 모두 받아들이는 바다의 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약간의 소금 때문이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배가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은 멀리 서 있는 등대의 작은 불빛 덕분입니다.

그러면서 추기경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려면 성체성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요청했습니다.

쉽게 말해 ‘모든 이에게 밥이 되는 삶을 살자’는 겁니다. 화살표

#우리가 기억하는 추기경

추기경이 생전 남긴 무수한 말씀 가운데, 깊이 파고드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땐 당신만 울었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이 미소 지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당신 혼자 미소 짓고, 주위의 다른 이들이 모두 우는 그런 삶을 사십시오.

김 추기경과 인연을 맺은 이들은 어떻게 추기경을 기억할까요?

성매매 피해 여성 쉼터인 막달레나공동체 이옥정(콘세크라타) 대표에게 김수환 추기경은 세 단어로 귀결됩니다.

밥, 막걸리, 오빠.

교황과 직접 대면하는 한국 교회의 최고위급 성직자였지만, 이옥정 대표와 피해 여성들에겐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아픔을 함께해주는 오빠였습니다.

격식을 허물고 막 대해도 웃어넘기고 바보처럼 맞장구를 쳐주고, 버림받은 그들의 애인이 되어준 ‘오빠 김수환’. 화살표

추기경을 만났던 이들은 김수환 추기경을 한 단어로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화살표

#기억은 기억으로만 끝나야 하는가?

추기경은 생전 유서를 세 차례 남겼습니다. 유서는 서울대교구장 재임 시절인 1970년 1월 16일 밤, 같은 해 10월 19일 밤, 그리고 1971년 2월 21일 밤에 작성됐습니다.

추기경의 유서가 공개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특별하지도 않은, 교구에서 쓰던 일반 사무용지에 친필로 단정하게 쓴 유서는 2020년 2월, 선종 11년 만에 공개됐습니다.

이 유서의 내용 중에 한국 천주교회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에게 남기는 글귀가 있어서 내용을 소개합니다.

우리 교구의 사제, 수도자, 평신자들이 일치되면 그것은 바로 한국교회의 발전의 길들이요. 미래를 밝히는 빛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답게 세상 속에서 가난하고 봉사하는 교회가 될 수 있게끔 모든 신부님, 수도자, 평신자들이 성신(성령)으로 인하여 하나 되고 쇄신되기를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유서의 내용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전하는 추기경의 바람일 것입니다.

2019년 2월 16일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선종 10주기 미사에서 당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김 추기경님은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일깨워주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화살표

#추기경의 정신, 우리 삶에서 구현하려면

추기경의 눈빛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바라볼 때 더욱 반짝였습니다.

추기경의 정신을 우리가 삶에서 구현하려면 추기경의 시선이 미치는 곳이 어디인가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추기경은 언제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추기경 선종 1년 만에 발족한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은 추기경의 정신인 ‘나눔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우리 각자가 스스로 발로 뛰며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는 단체를 후원하거나 이들 단체에서 봉사하면서 ‘바보’의 정신을 몸소 실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변 이웃과 지인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 이들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귀 기울여 듣는 자세가 추기경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추기경의 정신을 실천하는 또 다른 방법은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정신을 연구하는 김수환추기경연구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김수환추기경연구소 홈페이지에는 추기경의 생애와 업적, 말씀과 사진, 영상 자료들이 올려져 있습니다.

특히 연구소가 주관하는 시민교육 프로그램, 청소년 및 청년 프로그램을 본당에서 개최한다면 더욱 많은 그리스도인이 ‘바보의 정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김 추기경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시대에 존경할 어른이 없다고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 추기경은 ‘바보의 정신’이라는 씨앗을 우리 마음속에 심었습니다. 그 씨앗에 물과 양분을 주고 자라게 하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닐까요? 씨앗이 싹을 틔워 나무로 자라고, 그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 숲에서 미소 지으며 우리를 반기는 김 추기경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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